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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왓골식품

忠信堂 桐溪 鄭蘊古宅 천천히 오래  한옥 뜰을 거닐다...

이름 김영해 이메일
작성일 2016-05-13 조회수 2687
제목
거창 동계 종택-향교 생생문화체험기

거창 동계 종택-향교 생생문화체험기

강국희

kauthead@gmail.com

사단법인 우리문화유산알림이가 거창군청과 문화재청의 후원을 받아서 추진하는 지방문화생생체험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의 출생 성장지가 함양군이고 거창과는 가까운 이웃이어서 몇차례  피상적으로 거창을 둘러보기는 했지만 깊이 있게 역사적 스토리를 기억할 정도로 살펴보지는 못했다. 이번 행사에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지방의 문화유적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분들은 전국의 각지에서 모인 19명이고 우리를 안내하신 주최 측 강사3명과 함하여 모두 22명이었다. 행사 첫날 2016년 5월 9일 아침 8시 서울 지하철 양재역 1번 출구의 농협 앞에서 드림관광버스에 탑승하여 출발하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강사 팀은 준비된 행사일정자료와 아침 김밥을 나눠주면서 이번 문화행사에 대한 의미와 현지에 도착하여 진행되는 내일까지의 행사에 대하여 거창의 3대 명물 딸기, 블루베리, 사과에 대한 설명,  수승대, 향교, 동계종택 등에 대한 개략적인 역사배경을 설명 해 주었다. 거창의 지정학적 위치가 덕유산을 뒤편에 끼고 있어서 개울물이 맑고 차거우며 인근 함양군에는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상림숲과 열하일기의 주인공 박지원 선생이 국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물레방아도 있다. 뿐만아니라 1950년 김일성 빨갱이들의 기습적인 6.25 남침전쟁으로 인하여 3년간의 전쟁 중에 60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거창양민학살사건이 발생하여 7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가슴 아픈 사연도 간직하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복잡한 서울을 떠나서 1박2일의 고향 가는 길은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다. 월요일이어서 고속도로의 차량이 비교적 한가하였고 창밖에 펼쳐지는 울창한 나무들과 녹색 풀들의 모습은 그동안 햇빛을 받아서 광합성을 통하여 영양소를 듬뿍 저축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건강미를 느끼게 하였다. 출발지로부터 약 4시간의 주행 끝에 우리 버스는 거창에 도착하였는데 때는 바로 점심식사이었다. 조용한 지방의 마을식당에서 차려진 메뉴는 야채 중심의 건강식단이었다. 모두들 맛있다는 칭찬으로 자자했다. 식사가 끝나고 곧 이어서 첫 번째 행사로서 딸기농장으로 안내되었다. 온통 들판이 비닐하우스로 가득하고 비닐하우스 내부를 들여다보니 폭 70센티, 길이 100미터 정도의 딸기밭 두렁이 4줄로 반듯하게 설치되어 있고 양쪽 이랑에 빨강 딸기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림1. 거창의 딸기 밭에서

농장 주인으로부터 약간의 설명이 있었다. 우리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딸기를 따서 담도록 플라스틱 박스 1개씩이 주어졌고 마음에 드는 딸기를 직접 따서 담아서 가지고 가라는 것이었다. 농장 안에서 먹는 것은 무제한이라는 농장주인 말씀에 우리 일행은 행복한 아우성으로 화답했다. 현장에서 먹어보는 딸기의 신선한 단맛과 향기는 서울 마트의 것에서 느껴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농장입구에는 토질개선을 위하여 사암더미가 쌓여 있었다. 딸기의 품질은 기온, 토질에 따라서 좌우되기 때문에 과학적인 지력보존을 위한 재배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창은 화강암이 풍부한 곳이라 묘비의 석재공장이 여러곳에서 성업 중이고 버스 정거장에도 화강암 자갈을 깔아 놓아서 매우 정갈스럽게 보였다(사진1-동계 종택 현관 앞마당).

 그림2.  거창의 명물, 화강암 주차장 바닥자갈

거창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수승대를 산책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끼고 조선의 선비들이 공부하던 옛 서원의 건물들을 살펴보면서 한편으로는 해마다 열리는 현대판 국제연극제의 무대에서 기념사진도 촬영하였다. 수승대의 명물이라고 하면 단연코 거북이 바위인데 그 모양이 거북이의 머리와 몸통을 고스란히 조각해 놓은 듯하고 그 바위의 사방둘레에는 당대의 세력싸움을 대표하는 한자문구가 새겨져 있어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거북이 바위를 휘감고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여름에도 너무 차거워서 발을 담그기 어렵다고 소문나 있는 곳이다.

그림3.  거창 수승대의 거북 바위

우리 일행이 오늘 저녁에 숙박할 동계 종택(정 온 선생)으로 이동하였다. 고택이라고 하지만 손님 맞이를 위하여 침실에는 온난방시설 완비, 비단이불, 수세식 화장실, 샤워실 등이 잘 갖춰져 있고 식사의 메뉴와 품질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종택에서 치러지는 봉심행사의 예식에 참예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입었던 도포, 모자, 신발을 신은 자세로 의관정제하고 종손 정완수 선생의 안내에 따라서 서원과 정원을 거닐었고 봉심 제례에 참예하였다. 이런 기본예절의 행사가 끝나고 정원에 설치된 국궁활쏘기 시간이 되었다. 의관정제한 자세로 활을 겨누면서 표적을 향하여 시위를 당기는 자세는 사뭇 근엄하기 까지 하였으나 모두가 처음 해 보는 것이라 한두명을 제외하고 가까운 표적을 좀처럼 맞추지 못하였다. 성적에 관계없이 이런 궁중놀이를 체험해 보는 것에서 모두들 무척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림4.  동계 종택에서 활쏘기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 모든 참가자들이 대청 마루에 모였다. 종손 정완수 선생의 어머니 최여사님의 생애를 통한 교훈적인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 최여사님은 경주최부자댁의 따님으로서 17세에 시집오셨는데 금년 91세이지만 매우 건강하시며 지금도 붓글씨를 써시고 혼자서 나들이를 하실 정도로 정정하신 편이다. 그 당시 경주최부자댁의 따님들이 시집가기 위한 준비로서는 글쓰기가 기본의무였다고 하였다. 할머니도 결혼하기 전에 책으로 묶으면 3~4권의 분량에 해당하는 붓글씨를 썼다면서 한지에 쓰신 몇가지 글을 펴 보여 주셨다. 세로로 쓰신 글씨는 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그림 같이 보였다. 할머니는 지금도 붓글씨를 쓰시면서 생활하신다고 했다. 작년에 가족들이 함께 일본 아오모리 온천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다녀오신 여행기를 직접 낭독해 주셨는데 아기자기한 여행기의 감미로운 표현에 모두들 감탄하였다. 최여사님은 경주최부자집의 딸로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말씀도 하셨다. 최 준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통털어 대구대학 설립에 기부한 것을 자랑스워하면서도 후손된 입장에서 아쉬운 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경주최부자집이라면 우리국민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데 그 상세한 내막을 알고 있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번 방문이 경주최부자종택의 방문이 아니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을 기술할 필요는 없지만 최여사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약간의 스토리를 소개하겠다.

경주최부자집의 12세손으로 최 준 선생(1884-1970)은 이미 별세하였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일본식민지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에 자금을 많이 제공하였고 나머지 전 재산을 몽땅 털어서 대구대학을 설립하였다(현재의 영남대학교). 재산의 한푼도 자식들에게 남겨 주지 않고 몽땅 털어서 대학을 설립한 것은 선생의 나라사랑과 백성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 보여 진다. 조선시대 정치권력가들의 부정부패로 나라가 망하고 일본식민지로 전락해버렸는데 경주최씨의 재산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양심고백과 나라를 튼튼히 하려면 사람을 교육시키고 인재양성을 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에서 나라사랑의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던 것 같다. 부자 3대를 가기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 경주최부자집은 12대까지 부를 누렸으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 준 선생이 자식들에 대한 유훈으로서는 권력기관에 들어가지 말라, 흉년에는 논밭을 사지 말라, 파장(끝장)에 장보기를 하지 말라, 만석을 초과하는 부를 축적하지 말라, 삼천석 농사지어 천석은 사용하고 천석은 과객에게 베풀고 천석은 이웃주변에 나눠주라, 기부금을 조건으로 하여 무임승차 취직할 생각하지 말라(시험 쳐서 들어가는 것은 좋다) 등으로 알려져 있다.

최 준 선생의 한가지 한가지의 말씀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의 고리에 해당하며 이것을 끊어야 나라가 부강하게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살아있는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최 준 선생이 대구대학을 설립한 것은 김성수 선생이 일찍이 고려대학을 설립하여 민족중흥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지만 막상 큰 뜻을 품고 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해 보니 여의치 않게 되자 이병철 회장에게 대학운영을 맡겼지만 성공적으로 지속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옆에서 보고 있던 주변의 유력인사들 (그당시 신현학 경제부총리 등 경북지역 유지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대학을 살리기로 하였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통합하여 영남대학으로 개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 준 선생의 청렴결백한 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각 사립대학들의 설립자 후손들이 이권싸움에 휘말려 사회의 지탄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최 준 선생이 대학설립을 하면서 자손들에게는 절대로 무임승차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은 것은 위대한 인품의 선각자임을 느끼게 한다. 경주최부자댁의 윤리전통과 양반정신을 빛나게 한 위인으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고 최 준 선생에 대한 후손들의 입장으로서는 약간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되는 부분이다. 삼성그룹이 나중에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하여 국내 명문사학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도 고 이병철 회장이 최 준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애국애족정신 즉 교육과 인재육성만이 나라와 민족의 중흥을 담보할 수 있다는 교훈의 실천이라고 보여진다. 최 준 선생은 고려대학교의 설립자 김성수 선생의 교육정신에 감동을 받고 보성전문학교의 설립에 참여하여 기부도 상당히 하였다.  최 준 선생이 김성수 선생의 교육중흥정신을 물려받아서 대구대학을 설립하여 영남대학교로 발전시켰고 이병철 회장은 최 준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인재육성/나라살리자는 정신을 이어받아 성균관대학교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볼 때 하나의 정신적 맥락을 엿볼 수 있다.

그림5.  최 여사님의 붓글씨-2015년 일본여행기



이외에도 종택에 머무는 동안에 식사예절에 대한 밥상머리교육, 침구정리 습관, 어른에게 아침인사 드리기, 그리고 조선시대의 오침안정법 책 묶기, 장명루 만들기, 제기 콩주머니 만들기, 쌍륙놀이 등의 실습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 게임이라고 생각된다. 종택에서 점심을 먹고 종손 선생의 송별인사를 받으면서 다음 방문지 거창향교로 이동하였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 야외행사는 줄이고 향교에서 사당참배, 강학당에서 예절교육, 그리고 호패만들기를 끝으로 마무리하면서 이틀간의 거창 생생체험을 종료하였다. 서울로 떠나기 전에 약간의 시간이 있어서 거창박물관을 찾았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거창의 역사유물과 거창양민학살사건에 대한 기록에서 김일성 남침전쟁으로 인하여 우리양민들이 무수한 학살을 당했던 그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사단법인 우리문화유산알림이가 진행하고 있는 ‘생생문화재 프로그램’은 전국 각지에 가려져있는 소중한 우리전통문화재를 발굴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전통예절교육을  위하여 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에서 어른들과 외국인들에게도 참여의 폭을 넓히고 있어서 참가자들이 만족해하고 있다. 이런 문화사업은 중앙정부의 관계부처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 건전한 여가생활증진, 국내 여행활성화, 도농간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연결, 우리역사 바로알기 등 여러 가지 국민복지의 다목적 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그동안 50여년에 걸친 일본식민지, 3년간의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장과 일터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고 생활에 여유있는 분들은 해외 나들이도 활발하게 나가고 있는데 막상 우리문화와 전통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 부족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어른들의 재학습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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